외교적으로 나라를 지킨 숨은 영웅 : 조충
고려 시대의 문신이자 무신이었던 조충(趙沖, 1159~1224)은 학문적 능력과 외교적 수완, 그리고 군사적 역량을 겸비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보면,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배경과 맞물려 그의 역할과 영향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학문적 배경과 초기 경력
조충은 어려서부터 백가의 책을 두루 읽으며 학문에 정진하였고, 특히 『시경』과 『주역』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탁월한 기억력으로 옛 일을 잘 알았으며, 이러한 학문적 기반을 토대로 국자대사성 한림학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며 많은 전적을 편찬하였습니다. 1209년(희종 5년)에는 국자감시를 주관하였고, 1211년(희종 7년)과 1219년(고종 6년)에는 각각 동지공거와 지공거로서 과거 시험을 관장하였습니다. 그의 문장력은 높이 평가되었으나, 현재 『동문선』에 그의 시와 시책문 등 네 편의 글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2. 외교적 역량과 관련 일화
1196년(명종 26년), 조충은 금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당시 고려는 금에 사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는 천자의 나라에 제후의 사신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금나라의 의전 담당 관리가 황제 앞에서 "국왕 신 아무개의 사절입니다"라고 아뢰라고 지시하였으나, 조충은 임금의 이름을 신하가 입에 올리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며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끝내 그의 뜻대로 의전이 진행되었고, 귀국 후 명종은 이를 크게 칭찬하며 상을 내렸습니다.
3. 군사적 역할과 무신집권기 활동
1216년(고종 3년), 조충은 추밀부사 한림학사승지 상장군으로 승진하여 문무 관직을 겸직하게 되었습니다. 무신집권기에는 문신이 무신직을 겸하는 일이 드물었으나, 조충은 문무의 재주를 겸하였다 하여 특별히 이러한 관직들을 제수받았습니다. 1219년(고종 6년), 강동성의 거란적이 항복하는 과정에서 조충은 김취려와 함께 몽골군과의 협력을 주도하였습니다. 그는 몽골 장수 합진과의 외교적 교섭에서 뛰어난 언변과 지혜를 발휘하여 고려의 이익을 지켰습니다.
4. 조충의 업적과 평가
조충은 학문적 성취와 외교적 능력, 군사적 역량을 두루 갖춘 인물로, 고려 중기 정치와 외교, 군사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국자감시 주관과 전적 편찬 등을 통해 나타나며, 외교적 역량은 금나라와의 사행 및 몽골과의 교섭에서 두드러집니다. 군사적으로는 거란의 침입에 대응하여 몽골과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등 고려의 안위를 지키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5.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
조충의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습니다:
(1) 사료의 제한성: 조충에 대한 기록은 일부 사료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의 저작물도 대부분 전해지지 않아 후대에 그의 업적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였습니다.
(2) 무신집권기의 역사적 집중: 무신집권기라는 시대적 특성상, 무신들의 활동이 주로 부각되었고, 문신이었던 조충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조충의 이름은 역사 속에 묻혀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의 다재다능함과 고려를 위한 헌신은 재평가되어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